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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일보] 두 사람을 보내면서(장수익 교수)

작성일 2018-08-03 09:13

작성자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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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한창이던 때 미군의 공습 예보가 내린 원산 시내를 한 소년이 바삐 가고 있다. 혹독한 자아비판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는 아무도 없다. 돌아오는 길에 닥친 공습으로 소년은 사람들과 같이 방공호로 들어간다.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방공호는 무너질 듯 흔들리고, 옆의 여인이 떨면서 소년을 끌어안는다. 죽음의 공포와 여인의 냄새가 뒤섞인 혼돈……. 

이 기막힌 장면은 최인훈의 ‘회색인’에서 주인공이 내내 풀지 못한 숙제이자, 작가 역시 일생을 두고 풀려 했던 화두였다. 우둔한 필자로서는 이 장면의 의미를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장면이 공산주의라는 공적인 이데올로기와 여인의 냄새라는 사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장면이라는 것, 그리고 그 충돌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일깨우는 것이 전쟁임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타당하다면, 전쟁은 공적 이념을 앞세워 벌어지지만, 실상은 사적 욕망이 들끓고 있는 사태인 셈이다. 그러나 그 사적 욕망은 전쟁을 일으킬 권력을 지닌 이들의 욕망일 뿐, 그 전쟁에 희생될 이들의 욕망은 결코 아니다. 달리 말해 '우리'를 위해 싸우자고 하지만 실제로는 '너희'만 싸우라고 하는 권력이 전쟁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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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8080201000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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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