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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일보] 허공 속으로 열린 길(김창완 교수)

작성일 2018-05-16 09:31

작성자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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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붓한 오솔길을 걸어 아무도 없는 비탈에 올라 홀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곳에는 우리 시선을 한없이 깊은 침묵과 고요 속으로 힘껏 빨아올리는 허공이 펼쳐져 있다. 그것은 절대의 높이에서 어떤 미동이나 흐트러짐도 없이 가장 완벽한 빛으로 고여 있다. 그 허공 한편으로 구름도 기대어 있다. 허공의 새파란 빛의 눈부심은 우리들 내면으로 깊은 호흡을 들이쉬게 한다. 좌우를 둘러보면 비탈 주변에는 백양나무와 자작나무, 그리고 미루나무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늠름히 서 있다. 그들은 하늘로 두 팔을 쭉쭉 뻗어 올리고 점점 짙어져 가는 신록의 빛깔로 머리를 물들이고 있다. 이렇게 5월은 지상과 천상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서있는 것이다.

나의 시에는 허공이라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때의 허공은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존재의 터를 제공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허공은 무(無)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무 그 자체로서 유(有)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공은 무로서 유를 안고 있는 형상인 셈이다. 이는 인식의 전환으로서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허공은 이중적이기도 한데, 텅 비어 있으면서 또한 꽉 차 있는 것이다. 즉 무의 공존과 동시성을 의미하고 있다. 허공을 제재로 한 시들은 유와 무, 상승과 하강의 두 힘의 작용을 통한 존재의 비상(飛翔)과 추락의 국면에 얽혀 있었다. 시 속에서 상승과 하강 이 두 힘의 작용에 의해 존재하는, 비스듬히 날 수밖에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 생의 실존이라는 사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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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