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한남

[대전일보] 김완하의 시 한편- 눈의 묵시록(김창완 교수)

작성일 2017-03-14 09:25

작성자 장효진

조회수 997

수정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

잔해가 없다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사막의 한가운데라도

끝끝내 돌아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

눈이 따스한 것은

모든 것을 다 태웠기 때문

눈이 빛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

촛불을 켜고

눈의 점자를 읽는 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

혀를 내밀어보면

뼛속까지 드러나는 과거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다

 

사랑의 끝까지 갈 수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시인의 최근 시집 '첫눈은 혁명처럼'에 실린 시다. 시인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대기업 철강 회사의 러시아 법인장으로 체류하며 겨울과 러시아와 러시아의 폭설을 시로 옮겼다. 자작나무가 줄지어선 설원은 우리 기억 속에 언제나 소설장면으로 각인된 곳. 그 설원 속에서 펼쳐지는 혁명과 사랑과 이별이 백설을 물들이는 곳. 시인이 시베리아 광산을 헤매며 마주한 백야와 설원 속에서 느꼈을 서정이 올곧다. 그 전율은 곧 몇 줄의 시가 됐다. 그 강렬함은 시의 꽃을 피운다. 시인은 인터뷰에서 대륙의 겨울은 홀로 침잠하기 아주 좋은 계절이라 했다.


▲기사 보기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255479

정보관리부서 : 홍보팀

최종 수정일 :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