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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끝까지 잘하려면(한필원 교수)

작성일 2016-11-01 10:21

작성자 장효진

조회수 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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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시절 여러 대의 임금을 충성으로 모신 김처선(金處善)이라는 환관이 있었다. 연산군이 왕이 돼 방탕하게 굴자 김처선이 바른말로 충고했다. 그러자 연산군은 그의 다리와 혀를 잘라 죽이고 조정이든 민간이든 처선이란 두 글자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봉화의 닭실마을을 개척한 일로도 유명한 충재 권벌은 바로 그해 문관을 뽑던 과거인 문과에 급제했으나 곧바로 취소됐다. 하필이면 그가 제출한 과거시험 답안지에 ‘처’(處)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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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101030007#csidxc392a237cf36335acefcb3cfa60c0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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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21-03-11